위장(僞裝)이라는 것.
배나무에 짓딧물이 많이있어서 약을치려 분무기 통을 짊어지고 밭뚝 배나무로 나간다.
몇 번을 뿌려대고.... 잠시 뭔가 움직이는 듯 느낌을 받는다.
아무리 봐도 별반 다를게 없이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나뭇잎만 하늘댄다.
또다시 분무를하고 있는데 이젠 잎자루만 하늘로 향해 곧바로 선다.
가만 이파리도 없는 것이 어찌저리서는가?
손으로 건드려보니 이게 벌레인데 모양은 자벌레처럼 길고 나무줄기모양의 색깔과 영락없는 나무인데 위장의 변수가 탄로난것이다.
아예 손으로 잡으려고 약통을 내려놓고..... 이내 손바닥위엔 네 마리의 벌레가 올려져 자기들만의 운명을 직감하고 아예 죽은척한다.
원래 위장(僞裝)이란 사실과 다르게 장비나 행동으로 거짓으로 꾸미는 수단인데 이 위장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니 대충 짚고 가보자.
위장결혼에 수출. 매매와 증여, 전입과 전출. 취업과 공장, 위장평화등등 많이있는데 먹고살기위하여하는 위장과, 돈과 명예를 축재(築財)하는 위장하고는 너무도 다른 극에서 극을 보는것같다.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효(孝)에도 위장이 있냐는 것이다.
모 티브이에서 엊저녁 방영한 시묘(侍墓)살이를 보며 눈가가 젖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삼년동안 산소 옆에서 살아가는 시묘살이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이 따름에도 마무리되어가는 그의 시묘는 많은 감동을 주었다.
사과를 깍을때도 껍질은 당신이 드시고 살은 자식을 먹이며 금지옥엽 길러내것을 생각하며 흐느껴 우는 시묘자의 마음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효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했을것이다.
몇 년전 한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었다.
연로하신 부모가 거동을 못하고 누워서 생활하시는데 오늘따라 너무 힘들게 한다고 목소리에 힘이 쭉 빠져서 울고있는것이다.
그러는 그에게 이렇게 저렇게 위로하며 전화를 내려놓은적이 있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부모를 모시지도 더군다나 병수발 해본적없는 내가 그리 말한게 여간 후회가 되는게 아니다.
물론 그렇게 누구나 위로하고 했겠지만 이거야 말로 입으로 한 위장(僞裝)이 아닌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또하나 있는데 부모를 모시며 사는 사람들이다.
모든 세상살이가 반듯해야 부모공경을 할 수 있고 묵묵히 안고 살줄알아야 가족을 거느릴수 있으니 내 존경하는 이유다.
깊이 생각하는 오늘밤 쉽게 잠들지는 못하리라는걸 난 안다.
세월이 지나고 잇몸 내려앉아 음식맛 못느낄때 옆에서 주워 챙겨줄 효를 바라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중년이 지금이라도 늦지않음을 알고 시묘살이하는 것을 살아계실 때 다함이 옳을줄 안다.
그게 효(孝)인 것을 지금에서 아니, 이미 떠나고 안계신 것을 어찌 하오리까.
세상 시정잡배들이 오늘 그 시묘살이를 보고 올바름이 뭔지 다시금 돌아본다면 우리네 세상은 아마 꿈과 희망으로 뭉쳐진 아름다움이요 외국으로 이민 가려는 속썩은 마음은 저기 강물에 씻어버릴것이 분명하다.
여의도앞 한강물이 잠시 지져분해져도 깨끗한 세상을 위해서니 봉이 김선달도, 물장사하는 우리친구 이모씨도 잠시 휴가를 떠나봄도 괜찮을것이리라.......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