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하루(2004.09.19)
요즘 날씨가 많이 살쌀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을씨년 스럽고
풀잎에 맺힌 이슬도 차갑게 느껴진다.
온도가 갑자기 내려갔다.
온도계를 보니 9 도
갑자기 맘이 급해진다.
얼마있으면 서리가 올것같은 느낌에
여기 저기 둘러본다.
하긴 다른때 같으면 거의 밭작물은 마무리 단계에
있을텐데 올핸 윤달이 껴있어서
계절이 좀 늦게오는거같다.
어김없이 입던 레인코트를 걸치고
하우스로 들어간다.
이걸입지않으면 잎에맺힌 이슬에
옷이 모두 젖는다.
이른아침에 상쾌한 기분도 들지만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날씨가 추워그런지 수량이 갑자기 줄었다.
낮에 광합성작용으로 필요한 영양소를 비축했다가
밤에 열매로 보내 성장하는데
엊저녁 저온으로 성장 중단
이제는 서서히 커가겠지.
오이는 더 단단해지고 사각사각소리에
향도 짓어지리라.
일요일 오전은 무지 바쁘게 움직여야
시간을 맞출수있다.
밭뚝에 호박도 노랗게 익었다.
늙은호박이 여남은개 되는듯하다.
눈내린 겨울밤에 노란호박죽을 먹으며
긴긴밤 흐믓해하고
이웃 노인들 한사발씩 퍼드리면 그렇게 잘드시던
기억도 난다.
껍질벗겨 압력솥에넣고 푹고으고 난뒤
차갑게식혀 한그릇 먹고나면
그렇게도 흐믓하다.
원래 내가 그걸 좋아해서다.
보기만해도 신나는 늙은 호박을
내일은 집으로 옮겨와야겠다.
그러면서 호박순 함께따서
밥한술 입에넣고 된장에 쿡찍어 먹는그맛도
즐겨봐야지.
엊그제 온 비때문에 논한쪽 벼가 조금쓸어졌다.
장화를 가져가지않아서 바지걷어올리고
맨발로 논에들어가 쓰러진벼를 들춰 세운다.
발에닿는 진흙의 촉감이 부드럽게 느껴지고
가을볕 따사로움도 정겹게 와 닿는구나.
물속에 있던 벼알에서 싹이돋아나고
일으켜 세우는 맘이 안타깝기만 하다.
저것을 얻으려고 여름내내 키워냈던 기억들
그나마 다행은 한쪽귀퉁이 조금만 쓰러져
별문제 없지만 아리한 가슴을 쓸어내려본다.
가을이 익어가는 산속엔
빨간색이 점점 늘어난다.
옻나무 잎새에는 가을이 흠씬 와있고
간혹 그옆으론 노랗게 물들어가는
나무가 깊어진 가을을 노래한다.
아침이면 산허리 맴도는 안개가
밤새 쌀쌀한 기운을 알려주고
흘러가는 물소리에
옷깃을 여미게한다.
빨간 고추잠자리가
한낮의 오수를즐기고
심통난 농부가 꼬랑지잡아 흔든다.
갑자기 신경림시인의 목계장터가 떠오르네요.
" 하늘은 날보고 구름되라하고....."
청명한 가을하늘 흘러가는구름에
농부의 마음을 실어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