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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

농부의 생각으론....

by 아스팜농장 2005. 12. 20.

 

오전에 우체국 볼일이 있어서 내려갔어요.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밝히며 아름답게 반짝대고 창구 사무원의 유니폼이 빨간색인데 겨울 싼타의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우체국은 언제가도 분위기좋아요.

어떤날은 커피도 한잔가져다 주고요 또 어떤날은 조그만 선물도 주고 암튼 오래전 시작된 그들과의 만남이 믿음을 더하게 합니다.   

 

세달전쯤인가 건강보험을 가족모두 한꺼번에 다들어줬더니만 너무들 좋아해요.

원래는 우리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들은건데 내가 감사해야 하잖아요.

이래서 시골의 작은 우체국직원은 마을사람 모두 잘알고 지내고 있지만 집배원은 또 어떤줄 아세요?

어느동네 누구네는 언제가 제사이고 어느날이 생신이고 누가 아프고 안아프고를 훤히 알고사는 소식통이랍니다.

그래서 조그만 우체국 겨울은 언제나 따뜻합니다.

 

 

저번에 사둔 화로에 오늘은 고등어가 올랐습니다.

누구네는 오븐 렌지에 굽는다고 하지만 나는 화로에 굽는 생선이 좋아보입니다.

시린손 불쬐이며 석쇠를 뒤집습니다.

적당히 익어가면 기름이 자글자글 끓어오르죠.

이때 굵은소금 살짝뿌려 간간하게 간을하고 연한살이 얼추 익을쯤 맛보기 쬐끔떼어 입에넣어봅니다.

맛있어 죽습니다~~~

진짜 맛이 이런거구나를 알게하는 시간입니다.

어떤때는 등쪽 살만남기고 한마리 다 떼어먹기도 합니다.

이런재미가 산골의 겨울을 녹이는거랍니다.

 

어둠이 짙게깔린 골목어귀에 가로등 조심조심 불을 밝혀오면 팔순의 노구를 끌고 이웃 마실가는

다리 셋의 노인을 만날수 있습니다.  

꾸부정한 허리를 아무렇게나 생긴 작대기 하나에 의지하며 이밤의 길을 찿습니다.

하얀 머리칼의 느낌처럼 오늘밤 아무도 알려주지않는 어둠의길을 잘도 찿아가지요.

 

오늘밤엔 산새도 울어주질 않고 지나는 차소리만 웅웅 소리를 내네요.

내일 눈 온다는데 얼마나 오려고 이다지 고요한걸까요.

충청호남지역의 눈소식은 몸서리쳐지도록 원망스럽겠지요.

삶을 모두 가져간 곳도있고 희망의 끄트머리마져 뭉개버린 눈의 깊이만큼 인정도 앗아간 겨울의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할수있겠어요.

작은 땅덩어리의 반토막 나라에도 한쪽은 눈사태가 나고 반대쪽은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어떤곳은 祈雪際(기설제)를 지내야 할까보다하니 뭔늠에 세상이 이런지 나도 모르겠네요.

하긴 여기도 많이 추워야할텐데 아직 지낼만 하고 눈씻고 봐도 눈은 구경할수도 없습니다.

 

낮에 잠깐 장작을하러 옆산에 올랐더래요.

물론 톱하나에 낫한자루로 등걸을 골라냅니다.

물이 내린지 오래되었지만 아카시아 나무가 제일 잘탄다. 불꽃도 좋고 오래간다.

꽤나 굵은 다섯그루를 베어놓고 땀을 닦아냅니다.

두발정도의 길이로 토막을내고 어깨로 메어내 차에 실어 놓아요.

간간이 운동삼아 산을오르고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도끼로 장작을 패며 손수레에 한 가득 실어나르죠.

나무보일러 연통위로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고 화구의 뚜껑넘어로 전해오는 열기가 가슴 훈훈하게 하기도 하지요.

 

이런얘기를 주끼대니까 낭만적이고 전원생활이고 뭐 이딴말로 동경을 하지만 시골이란게 딱히 겨울엔 할일이 없어요.

어쩜 비싼 기름값 아끼려고 산을 올라 나무를 한다는 표현이 맞을껍니다.

찬바람 볼을 때리고 귀때기 아려지면 낫이고 톱이고 다 집어던지고 장갑벗고 감싸쥐는 모습을 보셨는지요.

지금쯤 상상으로 그리시겠죠.

농부가 사는 전원생활은 도회지처럼 한꺼번에 확 변하고 휩쓸리는 그런일은 거의 없답니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인듯 유유자적 갈때도 있고요 밤낮을 꼬박 새워가며 자식같은 농작물을 기를때도 있답니다.

분명 시골은 무뎌진 부모님의 손끝처럼 세월도 그리가나 봅니다.

어쩜 생체리듬도 서서히 짜맞춰지는 생활인지도 모를일이죠.

좋게생각하면 기쁨이요 즐거움이고 요즘 흔한 웰빙시스템입니다.

또한 달리생각하면 하루도 못살고 내뛰고싶은 마음 뿐일테니 부처님 말씀대로 내 마음속에 두가지 세상이 존재함이 분명합니다.

 

오늘은 왜 이런 말을 주절대는가 하면 뒷집에 사는 홀아비아닌 홀아비가사는데(사연이 좀 복잡다사함) 그의사위가 시골생활을 하러오겠다는겁니다.

말하자면 현대판 처가살이인데 농토가 많은것도 아니요 농사로 잔뼈가 굵은것도 아니고 단지 회사에 다니다 그만둔 40초반의 실증난 도시민이다.

어느날 내게 자문을 구해오겠지만 아직 어린 중학생초등학생 자녀셋인 가장의 고민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나도 감감합니다.

 

누군가가 내게 농부는 맨날 글대로라면 환상적인 삶을 살고있다고 했어요.

아니 인간사 나쁜일도 있을텐데 좀 느껴보자고 합니다.

내가 예전 칼럼방을 처음만들때 기초를둔것은 도시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농사지어 먹고사는모습을 보여주자함이였고 대다수 우리 연배이면 농촌을 이해할꺼같아 되는대로 보기좋은것만 써왔지요.

때론 잡지사에서 연락이오고 모 일간지에서 연재요청도오고 결국 지난봄엔 한권의 책이 제앞으로 배달되기도 했지요.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아름다운 전원생활이라 동경을가지면 안된다는것입니다.

얼마안되는 돈을가지고 내려와 정착을하며 밥술이나 먹고살게 될때까진 남모를 눈물이 골을 이루며 밤을 지새운 기억이 또렸합니다.

이렇듯 시골은 이제 아무나 들어와 살수있고 농사지을수있는 그런시절은 갔습니다.

또한 정서적으로 맞춰가면서 살아야지 그렇치않으면 이방인 됩니다.

좋은말만해도 모자라는데 쓸데없는 주절이를 했네요..이해이해~~*^^

 

한 젊은이의 말을 듣고는 기분이 좀그래서 해본소리인데 가슴이 답답하네요......

밖에나가 시원한 밤바람에 기분을 식혀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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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모레는 친환경 포럼에 참석해야하는데 자료나 슬슬 찿아 챙겨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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