顯忠日이다.
부지런히 오전일을 마치고 오후3시 평화의댐에서 碑木追念 藝術祭에 참석해야한다.
올해로 10회를 맞는 이 비목문화제는 이름이 그렇지 사실은 슬프고 슬픈 추모일이다.
어제 서울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밤1시., 아침기상 5시,...그러니까 꼭 4시간 자고 추념행사에 참여하기위하여 쉴참도 없이 오늘일을 한나절에 해놓고 점심도 먹는둥 마는둥 집을나선다.
한낮의 해는 그다지 덥지를 않고 구름사이 해가지나고 간간이 그늘을 만들어 준다.
평화의댐.
그곳에갔던기억이 두 번,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전국민이 성금내고 만들었다는 준공식날 가족모두 갔었고 두 번째는 비목문화제 첫 번째 행사할때인 96년도에 와보고 꼭 10년만에 다시왔다.
오는길이 꼬불꼬불 험하니 특별한 일 아니면 올일이 거의 없다.
몇 년전부터 댐을 높이는 공사를 했는데 거의 완료된것같이 보인다.
아직도 중장비들이 오르내리고 무언가 계속작업을 하긴한다. 아래서 올려보니 엄청나게 올려 붙이긴 했다 과연 저게 또 필요할때가 있을까싶다.
몇 년전 큰 비가 왔을때 북한에서 내려오는 장마물을 가두어 일시적으로 아래쪽에 피해를 줄이는데 일조를 했는데 아마 그때 이게 없었더라면 북한강엔 무슨 이변이 일어났을꺼같은 느낌을 나도 가지고 있다.
비가 엄청 퍼붙는 장마어느날 화천읍을 와 보았는데 화천읍 강뚝 반이 물에 잠기고 상류 화천댐쪽에서는 수근대는 소문을 들은적도있었다. 뚝 반이잠기면 읍내는 거의 수몰직전이다
그땐 그소문에도 산위로 뛸준비를 했었으니까..........
암튼 오늘 그곳 평화의댐에 가면서 많은 느낌도 받았고 또한 십년전 모습도 그리며 도착했다.
碑木文化祭10週年 追念 藝術祭.
선택된 사람들의 모임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몽고텐트 네 개 연결해 치고 산비알 바위옆에 弔花가 진열되어있고 향이 피워져 산허리를 맴돌고 , 도지사, 사단장, 군수, 국회의원, 군의원, 참전용사, 비목마을사람들, 초청된 외국인들 버스두대정도, 지역주민, 공연단 수십명, 그리고 나.........
이렇게 앉아서 시작된 追念行事는 평화의댐 안쪽 非武裝지대에서 부라스 밴드에의해 비목이 은은히 울려퍼지고 슬프디 슬프게 무명용사들의 넋을 불러모으며 하야디 하얀 국화꽃이 전해지고 있었다.
한명희씨의 축문 고하는 소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외침같았다.
잠시후 시낭송하는 방송국 성우의 목소리는 戰友를 잃은 老兵이 눈물을 흘리기에 충분했고 모든사람이 숙연해져서 잠시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산기슭에 이끼낀 돌무덤을 보고 적은 詩가 소리로 변하여 지금의 가곡으로 불려지며 이날엔 더욱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당시 소위였던 한명희씨가 원작자이며 오늘 그가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여기에 서있다.
그앞의 여성분이 시를 낭송하신 성우님이신데 목소리 너무 좋으셔서 잠시 시에 뭍혀 있었다.
追念音樂會가 진행된다.
합창단이 그때의 노래를 부르고 이어서 장사익씨의 찔레꽃, 대전부르스, 동백아가씨등이 불려진다.
하얀 모시한복을입고 특유의 넓은폭의 聲量과 제스쳐로 群衆을 함께 묶는데 충분했다.
이 追念문화행사가 야외이고 많치않은 인원이 모여있고 산속 강물앞에서 열리고 있으니 그느낌또한 肅然하다.
戰爭을했던 그 山下는 말이없고 綠陰만 무성하고 그 자리에서 치러내니 당시 같이했던 老兵의 가슴에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있다.
戰友여~~~ 戰友여~~~~~~~~~~!!!!!
잠시후 국악인 신영희선생의 길걷이가 이름없는 無名勇士들의 恨을 달랜다.
여러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무용단이 넋을 달래서 보내드리는 장면엔 너무 슬프니 말이없
다.
신영희선생의 사설은 계속되고 길고 긴 하얀광목이 펼쳐지고 연꽃의 배가 그위를 지나며 아쉬워 되돌아오고 또 지나가고를 몇차례 반복하며 떠나는 영혼을 만난듯하여 내심 괴로워 했다.
이렇게 추념제는 진행이되고 그사이 장사익씨가 내옆에 자리를한다.
무대의 그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모습은 우리네 이웃 아저씨모습이고 그또한 우리와 같이 신영희선생의 공연을 보며 같이 박수치며 좋아한다.
담소후 나란히서서 한컷하는데 자세가 영 안나오네요~~~*^^
오늘의 추념행사가 진정 이나라를 위해 戰爭속에 산화한 용사들을 위로하고 이로인하여 국가관이 확고해 졌으면한다.
그들도 귀한집 子孫이요 어머니의 아들이요, 가정의 아버지이며 한여자의 남편이였을텐데 여러모로 고생하며 살아오신 가족들도 또한 희생자들이다.
그들을위해 지금 내가 무엇을했는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오늘 非武裝地帶 다리를 건너며 北쪽을 바라본다.
조용히 물이흐르고 간간이 물새가 날으며 바람이 골을 가르니 고요한 긴장이 흐른다.
적막한 저곳에도 따듯한 봄이 왔을텐데 이젠 터놓고 다녀보면 좋으련만 철조망 가운데 지뢰란 말이 더 선명하게 보여지니 아직 이곳은 凍土임에 부인할 수가 없다.
철조망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이란 노랫말처럼 철조망은 길게 쳐져 국토를 두동강으로 나누어 막고 사무치도록 가고픈 故鄕도 못가며 生의 끝이 얼마남지않은 失鄕의 老軀는 오늘도 하염없이 북쪽하늘만 쳐다보며 비무장지대 철다리를 건너고있다.
碑木이란 말 자체로도 얼마든지 슬플수가있고 또한 그슬픔을 문화로 예술로 昇華시켜 여러사람이 記憶되게 하고 그 무명용사들의 犧牲이 바탕이되어 平和란 말에 劃하나 변하지 않았음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끝으로 사진을 허락해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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