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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

아..춥다.

by 아스팜농장 2006. 9. 11.

이른아침 이슬이 손이시릴 정도 차다.

이삼일째 밤공기가 심상치 않더니 새벽 댓바람에 손이 곱아 호박봉다리 씌우기가 난감하다.

잠깐씩 주무를 정도의 시림이 손가락 뼛속을 애리게 하면

옘병!! 이거저거 다 때려치고 쪼그리고 앉아 시간을 잠시 죽이고 나면 슬슬 마음의 조바심이 일어

어쩌겠어 지가 별수읍시 일어나야지......

 

아침의 이슬이 꽃속에 모여있어 꽃을 제거하다 물방울이 떨어지면 그것도 미칠지경이다.

 

또르르르...........

 

은쟁반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면 을매나 좋겠소만 널찍한 호박잎새에도 물방울은 옥구슬처럼 흐른다.

이제 넝쿨이 하늘높이 올랐으니 그위에 맺힌 애기호박을 건드리면 또르르 물이 흘러내린다.

아직 잠이 덜깨였는지 입에선 하품이 나다가도 저녀르꺼 앞가슴패기로 흐르면 정신이고 마음이고 온통 한곳에 집중된다.

 

등짝이 오그라들면 널찍하던 가슴속 마음도 갑자기 조막만해진다.

앞가슴 젖꼭지 가운데 골타고 내리는 동안 차가움도 더움도 분간이 안되고 배꼽아래 닿을때면 축축함으로만 느껴오지 이게 물인지 이슬인지 옷속에서는 같음이라.

 

이상하리만큼 갑자기 추워지니 놀래는건 인간뿐 아니라 한창 물올리고 좋아라 온도에 커가던 김장배추도 뻘쭘허니 잎을 늘어트려 거부한다.

그렇게 싱싱하고 진록의 호박잎도 주춤 머뭇대고 아예 크는걸 중단했는지 오늘아침엔 평일의 딱 절반을 따서 그렇게 좋던 나의 줏가도 하락세를 보이는구나.  

   

일단.

부자가 망해도 삼년은 먹을게 있다고 했는데 잠시 추웠다고 아직은 귀때기 발목아지 시릴땐 쪼매 더 있어야하니 봉다리 씌운 호박쌔끼들 거둬낼래면 병아리 졸만치 아직 햇살이 필요한거다.

그거 다 따내려면 약 이주정도의 시간이 걸릴꺼고 14일 곱하고 통장찍어보면 희쭉 웃음지으면서 조합문을 나설꺼고 그러다 맘이 동(動)해 새로 산 차타고 후딱 날라삐면 아마 거기가 어느 한적한 바닷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해에는 시월 보름경까지 수확을 했는데 올해는 어찌될찌 날씨가 이러니 종잡을수가 없다.

이젠 기후자체가 이상기온으로 뚜렷했던 사계(四季)가 히멀거니 어우러져 버리고 봄인가하면 여름이고 가을인가하면 겨울이 되어버렸다.

또한 가물지않으면 왕창 쏱아붙고 뜨겁지않으면 차가우니 누구말마따나 학씰이 대처하지않으면 쪽박차기 알맞다.

쪽빡도 소림사 사부 취권의 허리춤 쪽빡이면야 더없이 좋겠지만 개뿔도 없는 쪽빡인기라.

 

어제도 우리밭에 견학을 왔다.

입에서 소문을 타고 발없는 말(言)이 천리를 간다더니 남들보다 일단은 곱을 수확하니 그 비결이 뭔지 배우러 왔단다.

소문을 확인하려면 농협에 비치해둔 경매일지 확인하면 기록되어있으니 이사람들 그걸 다 보고 왔단다.

우리밭에 들어서면 첫마디가 "워낙 넝쿨이 좋구만..." 이런다.

다음이 "아랫쪽잎이 하나도 망가진게 없다..." 이겁니다.

그거야 관리잘하면 되는거고.... 물론 진지하게 설명도 해줍니다. 그러나 기초가 부족한 농업상식으론 이해가 "대략 난감" 이 표현이 맞겠지요.

쉽게말하지면 우산을 하나쓰고 비맞는거하고 두개쓰고 비맞는거하고 같은 이치로 광합작용을 많이 할수있도록  도와주는게 사람이 할일입니다라고 설명을 해줍니다.

네차례의 견학을 맞이하고 설명을 해주고 나는 나대로 또다른 기쁨을 맛 봅니다.

이런 나눔도 행복한거니까요~~~~

 

이밤이 뚝 잘리고나면 내일아침부터 얇은 티셔츠를 겹쳐입고 바짓가랭이 양말속에 꼭 감추고 샛바람에 거시기 얼지않도록 단디 단속하고 님을따던 뽕을 따던 해야할꺼 같습니다.

 

오늘 오후 밭뚝을 걸어 가는데 들국화가 옇은 보라색을 띠며 하늘대며 흔들리는걸 보았답니다.

계절의 오고 감을 이런걸통해 아는게 농부이지만 올핸 유난히 바빠서 한참을 지난뒤에야 뒤돌아볼수있으니 우째 나이 하나둘 늘어가면서 편해지기는 커녕 중심이동이 앞으로 옮겨지는걸 어찌해야 합니까?

아이들 둘다 대학졸업시켜놓고 조금은 여유롭게 맘 편할라했더만 사람의 욕심이란게 끝도 밑도 없는기라.

육씰허게 잔뜩벌려농께 돈은 되는디 몸은 아닌기라.

그렇다고 농삿꾼이 실쩌기 꾀까믄서 사람사서 할수도 없는기고 죽으나 사나 그져 나만 믿고 자라는 곡식들땜에 머릿꼭대기 중심이 자꾸만 앞쪽으로라든가 아님 뒷쪽으로 중심이동한다.

 

벌써 구월도 삼분지일을 꺾어먹고 남은건 뻘건 단풍들때 김밥 두어뭉테기 싸들고 심심산골의 골때리는 꼴짜기찿아 도토리 찿아헤매며 몇남매 꾸려가는 산돼지 가족 구경한다든가 아님 노루궁뎅이가 하얗게 변해가는지도 살펴볼일이며 요런것도 꿈꾸어 봄직하다.

 

어느핸가 저녁나절 차를몰고 산비알 꼬부랑길을가는데 작은골 단풍이 그렇게 이쁘더란말씨.

약간은 비켜갈만큼 공간을 내어주고는 차밖으로 발을 디뎌 단풍의 안내를받으며 하염없이 산을오르던일이 생각납니다.

해가 기울며 단풍은 더 없는 색감을 풀어내고 아기손마냥 흔드는 모습에서 나를 풀어헤쳤던 기억이 가을의 백미를 장식하려한다.

 

산골의 겨울은 빨리온다.

긴긴겨울을 준비하는 시골할배의 곱사등처럼 휜 갸날픈 등뼈의 능선에 잠자리 한마리가 맴돌고 약간의 체온속에 그래도 아직은 청춘인기라.

한손에든 양낫이 쓱싹쓱싹 베어내는 손놀림에서 길었던 날들의 아픔도 묻어나고 오직 한길의 人生을 자아내고있다.

 

이런걸보면 나도 가을을 타는 남잔가 부다.

이제 시작인 갈겆이가 가을타령하기엔 낯설기만하고 하늘은 맑고 높고 푸르고.

 

살이나 찌우자.

마음의 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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