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소나기가 한바탕 법석을 떨고 나드만 일만 잔뜩 만들어 놓았다.
늦게 어둑해지더만 번개가 번쩍이고 후둑후둑 비닐 지붕을 두들겨 대니 금새라도 물난리가 날꺼같다.
바람은 왜그리 불어대는지 미쳐 덩굴손을 감지못한 오이순이 넘어져서 일으켜세워 결속기로 찝어놓으려해도 거의 한나절을 소비해야 할꺼같은데 이런 우라질(雨裸跌)......
바람이 그칠 낌새가 없다.
오늘아침 일찌감치 길을나서고 일과는 그것으로 시작되고......
밭 가장자리 산밑에선 "쪽빡(박)바꿔주" " 쪽빡(박)바꿔주" 새소리가 요란하다.
여기서 "쪽빡바꿔주" 는 순전히 나의 사견임을 고지하고 그사연을 소개한다.
옛날 깊은 산골어느집으로 시집을간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에 못견디어 세상을 하직했는데 그사연이 기가막히게 애절하다.
다 각설하고 그며느리 밥먹을때 밥그릇이 쪽빡이렸다.
한창 젊은나이에 쪽빡에 밥을담아먹고나니 배가골아서 恨으로 남아있었는데 죽어서 새가됐다는 후문이고 그래서 그 울음소리도 쪽빡을 바꿔달라고 그리 울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쪽빡새"..(이것도 순전히 내 사견임을 표하며)
오늘아침 이 새가 숨어우는 바람소리가 아니라 숨어우는 새소리인데 너무 처량하게 울어 제낀다.
그 사연을 생각해보니 마음 한켠 아리해져 옆에있으면 실컷 밥이라도 멕여 보내고 싶다.
그와 대조적으로 한쪽 참나무위에선 黃鳥가 울어댄다 .
이 꾀꼬리는 아마 짝을 부르는 소리인 듯 한참뒤에 한녀석이 푸득이며 옆자리를 차지하는걸 보니 분명 사랑 타령인듯하다.
이렇게 산골의 아침은 모두가 부지런히 제 할일하며 기꺼이 자연에 순응한다.
요즘은 아래쪽 오이잎을 따주는데 이게 오랫동안 해온 나만의 기술인지라 몇마디까지 적엽을 해야하고 오이맺힌 것을 따야하고 곁순은 몇 개를 두어야하고 등등을 순간적으로 판단을하고 손가위로 싹뚝잘라야하니 자칫 딴생각이라도 하다보면 원 줄기를 자르는 일이 허다하다.
첫해엔 얼마나 많은 줄기를 잘랐는지 허무한 마음에 일을 멈췄던 기억도있다.
그래서 이일은 절대로 나혼자 하는데 힘은 들어도 두 번 손이 가질않으니 오히려 사람 사서 하는것보다 완벽하게 끝을낸다.
이게 뭐하는건지 아시는분은 알겠지만 방석입니다.
일할 때 쪼그리고 앉아서 하면 오금이 아프고 무릎이 저리지만 저걸 궁둥이에 붙이고 깔고앉으며 하면 수월하다고 한다.
저번 농협매장에 가니까 있길래 두개사왔는데 난 여적 안 써봤다.
저 끈사이로 다리를 넣고 궁둥이에 달고있으며 옮겨앉을때마다 높은 방석이된다.
오늘 하도 다리가 아파 저걸 사용해보기로 하고 궁둥이에 매달았다.
끈이 삼각이라 사타구니에 바짝치켜올려 모양새를 보니 하이구야 별꼴이다.
근데 안정감(?)은 있다.
삼각속옷모양 일단 고정이되니 중심(?)이 안정되어 나홀로 작업하기엔 딱좋다.
문제는 다리가 짧은 사람은 맞는데 나는 궁둥이방석이 땅에 닿질 않으니 이또한 다리가 긴게 죄이다.
한참 무아지경에 빠지도록 열심인데 오이 이파리 뒤쪽에 벌이 앉아 꼼짝을 않는다.
해가져서 빗방울 한두개 떨어지더만 이녀석 여기서 외박을하려나보다.
장난끼가 동해 살짝건드려봐도 막무가내 움직이질 않으니 분명 외박의 징조다.
낼아침 저놈이 여왕벌한테 얻어터지고 내 핑계대지 않을까 염려도 되지만 빗방울에 날개젖어 길위에 헤매는거보다는 차라리 그게 나을것이다.
오이꽃도 한창이고 간간이 먹을꺼는 몇 개씩 보인다.
오늘저녁은 첫 번째 딴 오이로 된장 듬뿍찍어 와작와작 깨물어 기쁨을 맛보리라.
이곳은 소나기내리고 부슬부슬 둬시간 비내려 일단 급한 가뭄은 불껐습니다.
모두 염려해주신 은공으로 하늘이 감동한걸로 믿겠습니다....
농부의 하루는 노곤한 팔다리 쉬는거부터 오늘을 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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